할머니의 철학 오늘도 어김없이 빈 상자며 빈 병을 현관 앞에 내놓자마자 그 할머니가 다녀갔습니다. 이 동네에 이사와서 바로 오시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수년째 마주치는 할머니입니다. 처리하기 곤란한 재활용품을 치워주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지만,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께 지저분함이 묻어올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접근 조차 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. 수년째 마주치지만 인사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. 빈병, 빈 상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가 혹시 다른 것을 요구할까 봐 하는 걱정이 앞서서였습니다.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. 초인종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보니 그 할머니였습니다. "무슨 일이세요?" 저는 앞 뒤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불편한 기색부터 드러냈습니다. "이거..." 할머니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