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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머니의 철학
오늘도 어김없이 빈 상자며 빈 병을 현관 앞에 내놓자마자
그 할머니가 다녀갔습니다.
이 동네에 이사와서 바로 오시기 시작했으니까
벌써 수년째 마주치는 할머니입니다.
처리하기 곤란한 재활용품을 치워주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지만,
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께 지저분함이 묻어올 것 같아서
아이들에게 접근 조차 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.
수년째 마주치지만 인사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.
빈병, 빈 상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가 혹시 다른 것을 요구할까 봐
하는 걱정이 앞서서였습니다.
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.
초인종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보니 그 할머니였습니다.
"무슨 일이세요?"
저는 앞 뒤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불편한 기색부터 드러냈습니다.
"이거..."
할머니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.
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에게 할머니는 말했습니다.
"아까 가져간 상자 안에 이게 들어 있더라고, 이 집 거 같아서..."
정신없이 청소하다 흘린 만원이 빈 상자 안으로 들어갔나 봅니다.
나는 고맙기도 하고 측은한 마음도 들어서, 할머니께 말했습니다.
"할머니 괜찮으니 그냥 쓰세요."
그러자 할머닌 먼지로 뒤덮인 손을 흔드며,
"아냐 난 공짜는 싫어. 그냥 빈 상자만 팔면 충분해" 하시며
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며 손수레를 끌고 떠나셨습니다.
순간,
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.
.
.
.
보이는 것만 보고,
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.
특히 사람을 대할 때는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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